페루 축구 국가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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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페루의 축구 국가대표팀을 다루는 문서.
現 감독은 리카르도 가레카이다. 화이트 앤 레드(La Blanquirroja), 잉카(Los Incas)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월드컵 본선에는 총 5번 진출했다. 1930년 1회 우루과이 월드컵에 첫 참가했는데 우루과이와 루마니아에게 2패로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오랜만에 참가한 1970년 FIFA 멕시코 월드컵에선 서독,모로코,불가리아와 같은 조를 이뤄 불가리아와 모로코를 이기며 조 2위로 8강(현재는 16강)에 진출했다. 그리고 8강전에서 대회 우승한 브라질을 만나 2:4로 지면서 탈락했다.
1978년 아르헨티나 FIFA 월드컵에 3번째로 본선 진출하여 대회 준우승국가인 네덜란드를 조예선에거 무재배하며 조 1위로 8강(역시 오늘날 16강)에 진출한 바 있다.(다른 조예선 상대인 이란,스코틀랜드를 이김) 하지만 8강 조별리그에선 브라질에게 0-3,폴란드에게 0-1, 아르헨티나에게 0-6으로 처발리면서 탈락했다. 다만 이 조별리그 결과를 두고 브라질에선 아르헨티나가 페루를 매수했다느니 온갖 소문이 들렸었다.조별리그에서 유리했던 브라질이 마지막 예선에서 아르헨티나가 페루를 크게 이긴 탓에 역전되었기에 나온 소문이었다.
1982년 스페인 월드컵 본선에 진출, 대회 우승을 거둔 이탈리아와 조예선에서 1-1로 비겼지만 같은 조의 폴란드에게 1-5, 카메룬과 무재배를 당하면서 조 꼴찌로 탈락했다. 이 뒤로 30년이 넘도록 월드컵 본선에 나가질 못하고 있었다.
FIFA 월드컵에서는 그리 큰 족적을 남기지 못한 것과는 달리 코파 아메리카에서만큼은 숨은 최강자이다. 총 2번의 우승 타이틀을 가지고 있으며, 가장 최근 우승은 꽤 오래 전이긴 하지만 1975년이다. 이후로 결승전에 진출한 적은 없지만, 꾸준히 4강과 8강을 오가면서 중간 이상의 성적을 내고 있다. 1995년 우루과이 대회에서의 예선 탈락을 마지막으로 2016년 대회까지 8회 연속 꾸준히 토너먼트에 진출하고 있다. 2004년에 자국에서 열린 대회에서도 8강에 올랐으며, 2011년과 2015년 대회에선 3위까지 올라갔다. 거기에 2019년 대회에선 1975년 이후로 처음 결승전에 진출하는 사고를 쳤다! 비록 브라질에게 패해 준우승에 머무르긴 했지만 2019년 대회 최고의 이변으로 기록될만한 일이다. 세계 최강으로 군림하는 브라질, 코파 아메리카 최다 우승 타이틀을 거머쥔 우루과이조차 가장 최근 대회인 2016년 100주년 기념대회에서 예선탈락했던 것을 기억한다면, 페루의 꾸준함은 평가절하받을 일이 아니다. 코파 아메리카 대회의 꾸준함이 월드컵까지 이어진다면 세계 강호로 우뚝 설 수 있는 잠재력은 분명히 가지고 있다.
한국과의 상대전적은 1승 1무로 우세. 1971년 가진 홈 경기에서 한국에 4:0 승리를 거두었으며, 이후 2013년에 평가전을 치러서 0:0 무승부를 기록한 바 있다.
스페인 월드컵 이후 월드컵은 계속해서 물을 먹다가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을 통하여 대륙간 플레이오프 끝에 진출하며 36년만의 월드컵 진출을 이뤄냈다. 중반까지만 해도 남미 8위로 처지며 페루는 탈락이 사실상 확정되었다는 말이 주류였으나, 후반에 연승을 거두며 칠레를 밀어내고 기적적으로 5위까지 올라오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대륙간 플레이오프에서 뉴질랜드를 1, 2차전 합산 점수 2 : 0으로 꺾고 36년 만에 월드컵 무대에 복귀했다. 페루는 그야말로 난리가 났으며 페루의 본선 진출이 확정되고 지진알람이 떴는데 지진애플리케이션이 페루인들의 환호를 지진으로 착각해서 난 것이라 한다.
그런데 팔로마 노세다라는 페루 국회의원이 축구협회를 국가가 직접 운영한다는 내용의 새로운 체육법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바람에 축구협회에 정치 개입을 금지하고 있는 FIFA의 제재를 받아 자칫 월드컵 본선 티켓을 박탈당할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 하지만 다행히 별 이야기가 없고 조추첨까지 끝난 상황이라 흐지부지된 듯.
유럽에 진출한 선수들이 그렇게 많진 않으나 대신 남미 빅리그인 아르헨티나, 브라질리그는 물론 북중미의 MLS, 사우디 등 중동리그, 심지어는 북아프리카 이집트 프리미어리그에까지 폭넓게 진출하고 있다. AS 생테티엔의 미구엘 트라우코, 셀타 데 비고의 레나토 타피아, 말라티야스포르의 크리스티안 타피아 정도가 유럽 중상위권 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이다.
현재 유니폼 스폰서는 marathon이다.
2. 역대전적
2.1. FIFA 월드컵
'''역대 월드컵 전적 순위 : 34위'''
'''⑧⑧'''
월드컵 진출 횟수 5회, 최고성적 8강 2회, 총성적 '''5승 3무 10패, 21득점 33실점'''을 기록하여 월드컵 통산 랭킹 '''34위''', 남미 7위에 올라있다. 36년 만의 본선에서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 호주전을 2:0으로 깔끔하게 승리하는 바람에 승점 3점을 추가해, 불가리아, 터키, 가나를 추월하고 월드컵 랭킹이 세 계단 올라갔다.
다른 나라들과의 상대전적은 다음과 같다. 볼드체 표기한 팀은 월드컵 우승국들이다.
대륙별 상대전적은 다음과 같다.
한경기 최다득점 기록은 1978년 조별리그 이란전 4:1 승, 최다실점 기록은 1978년 2라운드 아르헨티나전 0:6 패이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전의 경우 조작 논란이 있는 상황이므로, 이를 제외할 경우 1982년 조별리그 폴란드전 1:5 패가 최다실점 기록이 된다.
쿠비야스가 있던 시절엔 1974년을 제외하고 세 번이나 올라갔으나 나머지 기간에는 월드컵 구경도 못해보는 팀. 1930년 초대 월드컵에 출전했으나 이 때는 참가신청만 하면 자동으로 갈 수 있었고, 그렇게 뚫기 힘들다는 남미 예선에서 유일하게 단골로 올라갔을 만큼 쿠비야스의 존재감은 페루에서 상상 이상이다. 그냥 진출로 끝난 것이 아니라 8강을 두 번씩이나 올라갔으니. 1970년 대회에선 자국의 지진 피해에 대한 애도로 가슴에 검은 띠를 두르고 출전, 불가리아에 0:2로 끌려다니다 후반전에만 세 골을 몰아넣으며 사상 첫 승을 이끌었고 승점자판기 모로코까지 3:0으로 완파하면서 8강에 진출, 서독과 브라질을 상대로도 분투하는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1978년에는 리즈시절의 네덜란드와 스코틀랜드, 이란 조에 속해 2승 1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8강 2라운드에 진출했으나 브라질, 폴란드, 아르헨티나에 무득점 10실점으로 광탈한다. 특히 마지막 아르헨티나 전에선 너무도 무기력한 모습으로 0:6으로 대패했는데 브라질과 승점이 같은 상황에서 브라질을 누르고 결승에 진출하려면 4:0 승리가 필요했는데 페루가 네덜란드도 누르고 조 1위로 올라올만큼 전력이 강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형편없고 의욕없는 모습으로 대패했다는 것에서 의혹이 돌면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팬들이 죽일 듯이 싸우는 계기가 되었고, 아르헨티나와의 경기는 지금까지도 승부조작 의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페루 측에서는 실력 부족으로 졌다고는 하지만 조작 증거가 아예 없진 않기에 더욱 의심이 갔던 상황.
어찌됐건 찝찝하게 대회는 끝나고 1982년 다음 월드컵에선 2무 1패, 폴란드에게만 1:5로 탈탈 털리며 마지막 무대를 내려왔고 더 이상 월드컵에 올라오지 못하는 안습한 팀. 지금도 칠레, 콜롬비아의 전력이 수직상승한 상태고 수아레즈가 있는 한 우루과이도 넘사벽 수준에, 홈 깡패 에콰도르와 첫 월드컵 본선을 넘보는 베네수엘라 등등 경쟁상대들이 너무 막강해서 당분간 월드컵 본선에서 보기는 쉽지 않을 듯.
일단 2018년 월드컵 예선에서 5위로 대륙간 플레이오프행이 결정됐다. 오세아니아 대표 뉴질랜드를 상대로 원정에서 0-0, 홈에서 헤페르손 파르판과 크리스티안 라모스의 연속 골로 2-0으로 승리해 월드컵에 진출했다. 페루가 월드컵 본선에 오른 건 무려 36년 만이다. 본선에선 덴마크와 프랑스에 연달아 0 : 1 석패를 하며 일찌감치 탈락이 확정되었으나 마지막 호주와의 경기에서 2 : 0 승리를 거두며 40년 만에 1승을 추가해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최종 전적 1승 2패, 골 득실 0으로 대한민국과 동률을 이루었으나 다득점에서 1골이 밀리며 대한민국이 19위, 페루가 20위를 기록하게 되었다.
2.2. 코파 아메리카
'''CONMEBOL 코파 아메리카 역대 순위 : 6위'''
2.3. 남미 축구 선수권 대회
2.4. 코파 아메리카
2.5. 골드컵
2.6. 1936년 베를린 올림픽 8강 논란
1935년 남미 축구 선수권 대회는, 다음해였던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축구 경기 참가를 위한 예선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대회에서 우승한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는 출전하지 않고 대신 페루가 출전하였다. 문제가 된 경기는 8월 8일에 열린 오스트리아와의 경기였는데, 오스트리아는 3-1로 이집트를, 페루는 핀란드를 ''' 7-3 '''으로 이기고 8강에서 둘이 만나게 되었다. 발터 베르긴츠가 23분에 첫 골을, 클레멘트 슈타인메츠가 37분에 2번째 골을 넣으며 앞서가며 전반전을 끝냈다.
0 대 2로 뒤진 페루 국민들은 올림픽 출전권을 연장하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후반전에 접어들었다. 전반 75분 페루 선수들이 호르헤 알칼데를 통해 선제골을 터뜨렸다. 6분 뒤 81분 경기에서는 알레한드로 빌라누에바가 동점골을 넣었다. 경기의 남은 분에는 더 이상의 득점이 보이지 않았고, 경기는 연장전으로 들어갔다. 연장전에서는 경쟁이 치열했고, 페루 선수들이 2골 뒤진 상황에서 동점골을 넣으면서 경기는 연장전으로 접어들었다. 페루는 연장전에서 5골을 넣었지만 주심이 3골을 넣지 못했다고 선언해 최종 점수인 4-2로 승리했다.
오스트리아인들은 페루 팬들이 경기장에 난입해 축구 경기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재시합을 요구했다. 오스트리아는 또 페루 선수들이 오스트리아 선수들을 밀쳤고 한 명이 권총을 들고 있던 관중들이 "경기장에 몰려들었다"고 주장했다. 페루는 이 문제로 소환되었으나 독일군의 행렬식으로 인해 연기되었다. 페루의 주장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고, 올림픽 위원회와 FIFA는 오스트리아인들의 편을 들었고, 폐쇄적인 경기장에서의 재시합은 8월 10일에 예정되어 있었고, 이후 1936년 8월 11일에 다시 예정되어 있었다.
페루선수들은 모욕적이고 차별적이라고 판단하여 이러한 행동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페루와 콜롬비아의 올림픽 대표단 전원은 독일을 떠났다. 아르헨티나, 칠레, 우루과이, 멕시코가 페루와의 연대를 표명했다. 페루 올림픽 위원회 위원인 미겔 다소는 "우리는 유럽 육상에 대한 믿음이 없다. 우리가 이곳에 와서 장사꾼들을 많이 찾아냈다." 그 경기는 오스트리아에 부전승했다. 페루 팀과 대표단이 칼라오로 돌아왔을 때, 그들은 진정한 챔피언이라고 환호하는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페루에서는 분노한 군중들이 올림픽 깃발을 찢고 독일 영사관에 돌을 던지고 칼라오 부두에 독일 선박을 싣는 것을 거부하고 오스카 베나비데스 라레아 대통령이 '교활한 베를린의 결정'이라고 하며 선동적인 연설을 하는 등 올림픽위원회 결정에 항의했다. 당시는 이것이 주장되지 않았지만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 당국이 이 상황에 어느 정도 개입했을 것이라는 것이 통설이다.
오스트리아는 이 올림픽 축구 경기에서 이탈리아와 결승에서 경기해 2-1로 싸워 은메달을 받았고, 페루는 1939년 남미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다.
[1] 스페인어[2] 월드컵 본선 출전 비율[3] 개최국 없이 각 국가에 분산되어 경기가 열렸으며, 이 대회부터 풀리그가 아닌 조별리그+토너먼트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칠레, 볼리비아, 브라질, 콜롬비아를 연이어 누르고 사상 두 번째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당시 페루는 쿠비야스가 버티는 강력한 팀으로 월드컵 8강도 두 번이나 갔던 최전성기로, 이때 이후 지금까지 우승 문턱을 밟지 못하고 있다.[4] 개최국 없이 각 국가에 분산되어 경기가 열렸다. 전 대회 우승국 자격으로 4강에 자동진출해 칠레에 1무 1패(총합 1:2)로 밀려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3/4위전이 없었고, 공동3위로 처리되었다.[5] 개최국 없이 각 국가에 분산되어 경기가 열렸다. 3/4위전이 없었고, 공동3위로 처리되었다.[6] 20년만에 개최국을 다시 선정하기 시작했으며, 아르헨티나가 그 주인공이 되었다.[7] 참가국을 12개로 확대해 타 대륙팀을 초청하기 시작했고, 첫 초청국은 멕시코와 미국으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토너먼트를 8강까지 확대하면서 지금과 같은 대회가 완성되었다.[8] 47년만에 개최국이 되었지만 홈 어드벤티지를 살리지 못하고 무난한 A조(콜롬비아, 볼리비아, 베네수엘라)에서 2위, 8강에선 아르헨티나에 0:1로 지며 3회 연속 8강에 머물렀다.[9] 1997년 볼리비아 대회 이후 14년만에 4강까지 올랐다. 대회 우승국이자 1년 전 월드컵 4강 진출국인 우루과이와 1무(조예선) 1패(준결승)하고 멕시코, 콜롬비아, 베네수엘라를 모두 누르는 등 상당히 선전했다. 더불어 1995년 이후 6연속 토너먼트 진출의 기록을 이어갔다.